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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낙지볶음
    그냥 2020. 12. 25. 00:06

    어느 날, 점심으로 회사 모처에 있는 음식점을 갔다.



    그곳은 점심 특선으로 낙지전골과 낙지볶음을 세트로 판매하는 식당이었고
    이전에 와본 적이 있던 직원에게 매우 괜찮은 곳이란 이야기도 들었으니 기대를 안 할 수 없었다.

    넷이 가서 점심 메뉴 4인분을 주문했다.
    낙지전골이 먼저 나오고 우연히 버너 가까이에 있던 내가 국자를 집었고 전골을 조리했다.

    이어서 낙지볶음이 나왔는데 테이블에서 버너가 차지하는 공간이 크다 보니
    하나의 큰 쟁반에 나온 낙지볶음은 내게서 가장 먼 곳에 자리 잡게 되었다.

    내가 끓는 전골을 수습하기 위해 국자로 휘젓는 동안 남은 셋은 공유지의 낙지를 가차 없이 유린했다.
    전골이 수습되기까지 십여 초 이내에 낙지볶음은 1인분으로는 볼 수 없는 만큼 처참한 양만이 남아있었다.

    멋쩍은 웃음과 함께 남은 낙지볶음을 먹는데 다들 그제야 각자 챙겨간 양이 많다는 걸 자각했는지
    이전까지 적당한 대화가 오가던 테이블이 내가 낙지볶음을 다 먹기 전까진 참으로 고요했다.


    처음 애써 미안함을 보인 건 막내였다.
    식사 후 미안한 눈길을 자꾸 주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.

    남은 두 사람도 각자의 표현을 했다.
    직급조차 나보다 높은 부장과 차장인데 막내가 그러는 걸 보고 뭔가 느낀 게 있었는지
    평소엔 절대 지갑을 열지 않던 차장이 웬일로 커피를 산다 하고
    부장은 누구라도 들으라는 식으로 오늘은 뭔가 많이 먹은 것 같다고 에둘러 표현하더라.

    일할 땐 그렇게 아무 말도 않고 치열하게 하는 사람들이
    고작 낙지볶음 한 숟갈 더 먹겠다고 보여주는 그 허술함이 너무나 인간미 넘치더라.

     

    좋은 이벤트였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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